니콜라에 차우셰스쿠 (Nicolae Ceauşescu) 

 

 

루마니아의 독재자였으며 김일성과는 의형제를 맺기도했다. 

 

뛰어난 1인정치의 독재자가 있으면 초고속 발전을 할수있으나,

멍청한 독재자가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보여주신분이다.

 

 

 

 

 


 

 


 

북한을 따라 자신을 개인숭배하는 대상으로 발전시키려 하였고, 김일성의 정책을 열심히 모방하려 하였으나 

유럽인 루마니아에 적용하려한게 중대한 실수였다.

북한이야 유교사상에 길들여졌고 독립투사로 둔갑하고 반일정서를 이용해 아바이수령작전이 먹힌거지,

제한적이었지만 민주주의 맛을 본적있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주의 전통을 가진 유럽인들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지


이 인간의 정책중 가장 멍청한 정책은 바로 인구정책이었다.


“에... 국가가 수출 안하고 내수진작효과 낼수있는 인구수가 얼마냐?”

“한...1억 잡아야겠죠?”

“그치? 내가 생각해봤는데 루마니아가 강해질려면 역시 머리수가 많아야할거같아.”


맨날 드라큘라의 나라로 불리는게 지겨웠는지 루마니아를 발전시키겠다며 야심차게 새로운 인구 정책을 내놓는다.


“앞으로 루마니아에서 이혼,낙태,산아조절 모두 금한다. 태아는 사회전체의 재산이다! 이혼,낙태,산아조절을 할수있는 여성은 아이가 넷이상이거나 공산당 당원이어야한다!“ (구글에서는 5명이라고 나오더라)

 

 


 

당연히 국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게 말이 되!! 그런게 어딨어!!”


반발했지만 어쩌겠나 최고권력자가 하라는데 해야지


근데 문제는 차우셰스쿠가 집권하기 전까지 루마니아는 상당히 프리했었다. 

1966년까지 루마니아에서는 평균 5건의 임신중 1건만 출산, 나머지는 낙태하는 나라였는데 난데없이 국가에서 금지시킨거다.

낙태시술하는놈들 피임약 먹는놈들 피임기구 수입하는놈들 모두 죽인다!

강력한 압박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은밀하게 불법 낙태시술과 콘돔,피임약이 밀수되었다

하지만 수요는 많고 공급은 어려우니 당연히 값은 오르게되고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강력한 인구정책을 시행하면서 월경경찰까지 만드는데 이들은 직장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임신을 독려하고 임신한 여성을 표창한다.

임신하지않은 여성에게는 강요와 세금까지 물리며 압박하며 

네명이 한조가 되어 벌거벗고 산부인과로 들어가 한번에 진찰받는 가축같은 취급을 당한다.




이렇게 밀어붙이니 임산부는 계속 늘어만 갔다.


하지만 헝가리로 낙태시술을 받거나 망명하려는 산모들은 다뉴브강을 건너기위해 몰려들고

다뉴브강 건너려다 걸린 산모들은 요단강을 건너게 된다.


이렇게 강력한 정책의 결과 1년만에 신생아 출생률이 두배로 늘어났는데....


"지도자 동지! 신생아 출생률이 두배로 늘어났습니다!"

"요시! 역시 난 천재야!!!"

"근데 유아사망률도 145%나 증가했습니다"

"........."

당장 보육시설과 육아 시설이 부족하고 소아과 의사도 부족한데 애만 낳아대니 유아사망률은 증가할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차우셰스쿠는 또다시 기똥차게 멍청한 생각을 하는데


“유아 사망률을 줄여야할거같습니다.”

“유아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생후 한달이 지나지않은 아기에게 출생신고서를 끊어주지마”

“완전 그럴싸한데?...”


당장 출생신고서를 끊어주지 않자 부모들은 장애아들을 시설로 버리게 된다. 

보호 시설로 보내진 아기들은 방치되어 죽거나 쇠약해졌는데 체력 강화를 목적으로 수혈하다 또 에이즈에 왕창 감염시킨다.


“뭐 어쨌든 인구수는 늘어났잖아. 그게 중요한거지”


차우셰스쿠는 스스로 정책결과에 만족하고 딸쳤지만 태어난 아이들과 부모들은 만족할수없었다. 

차우셰스쿠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세대의 아이들과 달리 학업 성취도, 노동시장에서의 선호도 등 월등히 뒤떨어졌고 , 반대로 범죄율은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높았다.


부모가 원하지도 않는데 태어나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되면 사회의 패배자로서 살아가게되다가

1989년 동구권이 붕괴가 시작되며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거리로 나온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


1989년 12월 25일 차우셰스쿠와 마누라는 대량학살을 비롯한 여러죄목으로 기소되었고 총살을 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우셰스쿠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차우셰스쿠 정권 타도 시위대의 선두로 서서 몰아냈던것.


인구정책에 초점을 둬서 글을썼지만 차우셰스쿠의 삽질은 이밖에도 호화로운 인민궁전을 짓고 사치를 일삼으며 무리한 공업화로 빚을 지는등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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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과의사=이발사


 


만화에 의사가 나온다면..

 

닥터K나 블랙잭, 의룡 같은 만화나 드라마보면 천재외과의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다.

안과의사나 피부과의사가 응급상황에 뛰어와 멋지게 치료하는 작품은 본적이 없다.

 

그정도로 현대사회에서 외과의의 대접은 좋고 그만큼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근데 몇백년전에는 외과의사를 의사대접 안해주고 대학에서 외과학과 자체가 퇴출당하기도 했었으며,

이발사와 경쟁했다고 한다.


 

<영화에는 나온적은 있네, 영화 롤러코스터 中>



때는 13세기 중엽, 유럽 최고의 의과대학인 파리대학에서 외과 과정수업을 완전히 폐지했다. 

이유인즉슨, 의사들이 하기엔 너무 천박한 일이라는 것이다. 

꼬매고 고름짜는일은 이발사로도 충분하다는 논리! 

대신 의사들은 고귀한 의료행위로써, 피 뽑기인 사혈과 장 청소인 관장을 통해 환자들을 치료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 당시의 의료 상식은 몸속에 있는 나쁜 피를 뽑거나 관장을 통해 나쁜 기운을 없애면 병이 낫는다! 였다

 


덕분에 의료현장에서 활약하는 의사의 수는 외과의보다 내과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파리대학에서 외과과목을 정규과정에서 제외시키자,

유럽의 다른 의과대학에서도 덩달아 외과 과목을 폐지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밥그릇 뺏기고 차이게된 유럽 각지의 외과의들은 들고 일어나는데...


“x같아서 못해먹겠네... 우리가 대학 만들자 우리가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면 되잖아?”

“내과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외과의끼리는 따로 뭉치자!”


이리하여 파리, 에든버러, 앤트워프, 런던 등에서 개업했던 외과의들이

 

저마다 대학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학생들을 받았다. 

 

 

 


 

하지만 시대의 대세는 내과였다.

점점 외과의가 설곳이 줄어드는 상황. 그래도 단결한 외과의들의 화력은 대단했다.


“이발사들이랑 동급으로 취급받으니까 짜증난다”

“그새끼들은 가운이 짧으니까 우린 긴가운을 입자!”

“그래! 가운은 길어야 권위가 사는거야”


물론 가운만 길게한다고 없던 권위가 갑자기 생기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외과의들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가운을 입고 진료에 나선다.


이렇게 외과의들이 똘똘뭉치자 내과의들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외과놈들이 모여서 학교를 만들었대”

“이발사나 다름없는새끼들이 이제 의사흉내를 내려고하네..”

 


이번엔 내과의들이 뭉쳐 대학에 외과 속성반을 만들어버린다. 

목적은 이발사들을 가르쳐 이발외과의사 자격증을 줘서 외과의의 권위를 박살내 버리는 이었다.

 

 

 

 


“상처난 환자는 피를 빨아줍니다”

“곪은 환자는 고름을 빨아줍니다”

“좋습니다. 이제 당신은 외과의사가 됐습니다”

 

 


 

이렇게 무분별한 자격증 뿌리기로, 무서웠지만 속성으로 외과의가 된 이발외과의들은 사회에 퍼져나가게 된다. 



 

<아드리안 브라우베르의 작품 '수술' 치료하는 오른쪽옆에 이발사가 면도를 하고있다>


 

 


 

그리고 그들만의 조직을 구축하며 정규과정을 거친 외과의들의 상징인 청백적 간판을 내걸기까지한다. 

(그래도 나선표시로 변형되어 차이는 있었다. 오늘날 이발소앞에 걸려있는 청백적 간판은 이렇게 만들어진것.)


그러자 환자들은 어디가 정규과정을 거친 의사의 병원인지, 어디가 속성반을 거친 이발외과의 병원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순 돌팔이 새끼들이야”

“외과에 가면 맨날 빨간약만 발라줘”


내과의들이 원했던 여론이 형성됐다. 

환자들은 외과의사를 믿지못하게되고 진짜 의사는 내과의라는 결과물을 얻는다.


그러나 이렇게 외과의가 받던 푸대접을 일거에 뒤엎어 버리는 인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루이14세다.

 

 


 

 


 

 

 


 

강력한 프랑스를 만들었던 태양왕 루이14세. 심각한 치질에 걸렸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자체가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어의들은 당연히 내과의들이었다.

가필드 대통령처럼 어의들은 치료한답시고 연고바르고 고약을 쓰다가 쓸데없이 관장만 하면 낫는다! 관장! 관장! 이런 분위기였다. 

(루이 14세는 근 2천회 이상 관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장을 해도 치질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루이14세는 항문치료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똥꼬안을 살펴보게한다.


본격적인 똥꼬검사에 들어가자 항문에서 자그마한 혹을 발견하게된다. 

내과의들은 끽해야 치핵 정도로 알았는데 혹의 등장으로 묘하게 꼬이게되고...

속수무책인 내과의들 앞에 치질의 신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 라는 외과의가 등장한다.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

 

 


 

펠릭스는 그동안 수많은 임상실험을 하며 치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근데 몇 명 죽였다고 카더라) 

본인이 루이14세의 치질을 고쳐준다고 장담하였다.

근데 몸에 칼을 대서 수술을 해야하고 펠릭스에 대한 루머 (수술하다 사람을 여럿잡았다 카더라, 마루타가 죽으면 몰래 공동묘지에 묻는다 카더라) 를 들은 루이14세는 좀 갈등한다.


하지만 이런 위험부담을 떠안을 정도로 치질의 고통은 극심했다.


“젠장 그래! 수술하자!, 실패하면 죽여버리면 되니까”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루이 14세는 감동했고 펠릭스는 인생역전된다.

게다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과 비슷한 생활을 했던 귀족들도 치질에 많이 걸렸는데 

이들 모두 수술해 주며 펠릭스뿐만 아니라 외과의에 대한 인식자체가 바뀐다.


절대왕정국가에서 왕의 신임=출세

이제 시대의 대세는 외과의가 되었다.

외과의사들은 기회를 놓치지않았고 다양한 수술법을 개발하며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게된다.

물론 루이14의 치질이 아니었더라도 아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외과의의 중요성이 언젠간 부각되었을거다. 

하지만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교차로라고 그로인해 한발 빨리 외과의가 빛을 보게된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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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명했던 투톱들에 대해서 포스팅 해 볼게


 


 

첫번째는

2000년 부터 2004년까지 같이 호흡을 맞춘

하셀바잉크 , 구드욘센 투톱이야

둘다 현 구단주 로만이 오기전 첼시 주전 스트라이커 였는데 둘 다 로만이오고나서 크레스포 , 드록바에게 자리 밀려서 하셀바잉크는 타팀으로 이적하고 구드욘센은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옮기고 살아남았지만 결국 에시앙까지 영입하면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지

 

둘이 프리미어리그에서 합자한 골은 무려 147골이나 된다고해


 

 

 

 


두번째는

 

2000년 부터 2004년까지 리버풀에서 호흡을 맞춘 에밀 헤스키 랑 마이클 오웬 조합이야

한명은 피지컬이 좋고 다른 한명은 스피드가 쩐다! 그래서 골을 많이 합작한걸로 기억해 더구다나 같은 잉글랜드 국가대표여서 국대에서도 꽤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기도 해
2001년에 오웬은 발롱도르 까지 수상하고 04년뒤에 레알로 이적하고 헤스키는 프리미어리그 중위권팀들 몇군데 돌아다니다 지금은 호주에 뛰고있어

둘다 최고의 활약을 보여줘도 리그우승은 못함

 

 


 

 

세번째


 

베르캄프 & 앙리 조합

1999년 부터 2006년까지 같이 뛰어

이때 축구 본 사람이라면 뭐 설명할 필요가없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투톱이지

무패우승도 하고 앙리는 득점왕도 4번이나 차지하고 킹으로 군림하지

위에 하셀바잉크도 2번의 득점왕을 했지만 국가대표엔 베르캄프가 있어서 국대 커리어가 좋지 않았어

 

 


 

 

 

네번째는


베르바토프 & 로비킨

같이 뛴건 2006년에서 2008년 두 시즌 정도밖에 안되는데 무려 86골이나 합작을해

이때가 프리미어리그 가장 재미있지 않았나 싶어 로비킨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최전방에 서고 베르바토프가 킨 보다 조금 뒤에 처진 스트라이커로 많이 출전했어 2시즌동안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베르바토프는 맨유 , 로비킨은 리버풀로 이적하는데 둘다 최악의 활약을 펼치면서 로비킨은 토트넘으로 리턴하고 희대의 먹튀라고 욕먹은 득점왕 베르바토프는 풀럼으로 이적하지




 

 

 

다섯번째

델피에로 , 트레제게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같이 뛰었어

사실 옛날부터 뻥피엘은 챙겨봤는데 다른 리그들은 중계를 잘 안해줘서 많이 보진 못했어 그래도 이 둘은 모르는사람이 없지, 트레제게는 최고의 마무리 공격수였고 델피에로는 찬스를 만드는 판타지스타였지. 이 때문인지 호흡이 좋아서 둘은 400골을 넘게 만들었다고 해.

2000년 유로때 이탈리아 프랑스 결승전에서 트레제게가 연장 골든골을 넣고 프랑스가 우승할때 1:1찬스 놓친 델피에로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2006년 월드컵때는 델피에로는 패널티킥에 성공하고 트레제게는 실패해서 프랑스가 준우승에 머물렀지 지금은 둘다 인도리그로 갔다고하더라구


 

 

 

 

 

여섯번째


수아레즈 , 스터리지


지난 시즌 최고의 투톱이였지 같이 포텐터트린게 저번 시즌밖에 없어서 쓸까 말까하다가 그래도 리버풀이 지난 시즌 준우승까지가고, 한시즌에 둘이 50골을 넘게 폭격해서 올렸어 뭐 수아레즈는 포텐터트리고 바르셀로나 가고 스터리지는 지금 부상당해서 안나오고있던데


 


 


 

 

일곱번째는


히바우두 , 호나우두


클럽팀 말고도 국가대표에도 영혼의 투톱들이 있는데 대표적인게 호나우두랑 히바우두

둘의 호흡도 좋지만 사실 한명씩만 봐도 역대급 선수라서 뭐 당연히 잘해야되는 조합이지 2002년에 한일월드컵에서 호흡맞추면서, 월드컵 5번째 우승을 만들었지


 

 

 

 

여덟번째


클로제 , 포돌스키


사실상 독일 최고의 애국자 두분

2006년부터 2014년까지 3번이나 같이 월드컵에 참가하는데 2014년 월드컵에선 같이 호흡맞출 뭐 그런것도 없었고

2006년엔 클로제가 골드슈 포돌스키가 최우수 신인상 클로제가 5골 넣고 포돌스키는 3골 넣지

2010년엔 클로제가 소속팀에서 20경기 나와서 1골 넣고 포돌스키는 무려 1425분동안 무득점 활약을 펼치는데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되서, 독일에서 말 많았다고해 뢰브가 의리로 뽑은거네 그런데도 포돌스키는 2골 클로제는 4골 넣으면서 애국심으로 화답하지

 

 

 

 

 


아홉번째, 마지막이야


토레스 , 비야


우리시대 스페인 최고투톱

2008년 유로부터 2010 월드컵 2012 유로 까지 3개 메이저대회 연속우승하면서 스페인 시대를 알린 투톱들이야

지금은 둘다 나이를 먹어서 운지할 시기이지만 몇년전만해도 토레스 비야가 최고였지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 할게

 

읽어줘서 고맙구 오늘 하루 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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