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제목에서 보면 알다시피 스님들의 금육식 생활에 대해서 알아볼까 해.

뭐 최근들어서는 지인을 통해 고깃집에서 스님을 봤다는 이야기 한번쯤은 화제가 되기도 하지? ㅋ

이와 같이 최근 들어서는 스님들의 육식이 점차 허용되는 기류지만 일반적 이미지에선 금육식을 하는게 스님들이지.

자 그럼 이와 같은 식생활은 언제부터 이어졌나?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그거야.

 

 


 

종교 이야기가 들어가니 조금 민감한 문제일수 있는데,

그냥 자료에 따른 흥미 글로만 봐주면 고마울것 같아.

 

 


 

 

 

 

1. 불교는 원래 육식을 허용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설이 많다. 그 중 음식과 관련된 재미있는 설은 바로

돼지고기 튀김을 잘못 먹고 소화불량으로 고인이 되었다는 설이지.


금육식을 하는 불교에서 그것도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돼지고기를?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석가모니는 먹기 위해서 짐승을 일부러 죽여서는 안돼지만 자연사한 짐승의 고기는 먹어도 좋다 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했다고 해.


그래서 옛날에 스님들이 음식을 시주 받으면 그 안에 고기가 있어도 그냥 먹었다고 한다.

 

 


 

 

 

 


2. 양무제의 불교 사랑


그럼 대체 언제부터 고기가 금시 되었냐 하면 바로 남북조 시대야.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간략히 위진 남북조 시대를 설명해줄께. 진나라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한 후 사마씨의 왕권 다툼으로 진나라가 망하기 시작했지. 그 이후 북방 민족들이 화북 지방을 점령하였고

한족들은 남으로 내려와 동진/송/제/양 나라를 세웠어. 그 중에 양무제가 다스렸던 양나라가 가장 융성한 문화를 누렸어.


양나라를 세운 양무제 제위기간 47년 동안 문화 발전에 투자를 많이해서 성군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정치적 능력은 별로였다는 평가도 있고, 2가지 관점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해. 


양무제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거론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사람은 심각하게 독실한 불교 신자였어. 불교가 성했고 어느나라 국민이나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남북조 시대에 뭐 특별한거 없지않나 하겠지만 정도가 지나쳤어.

 


 

제위기간 동안 사찰을 수도에만 500개, 양나라 전 국토에는 2800개가 넘게 건축했어.

그것도 모잘라서 양무제는 중이 되고싶다면서 한두번도 아닌 네번이나 제위를 버리고 동태사 라는 절로 도망갔기에 신하들이 거액의 돈과 제물을 절에 바치고 몇번이나 수습했어.


독실한 불교신자 답게 양무제는 ‘자비’를 제일의 가치이자 국가 운영 철학으로 삼았지만....

이것도 정도가 심했어.

공사를 구분 못하고 큰 죄를 지어도 나라에 제물을 내면 사면해줬어.

웃기는건 모반이나 암살을 했어도 그랬다는 거지;


과도한 사찰건축과 거액의 세금을 절에 탕진하는거에 분노를 한 양무제의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자비를 이유로 들며 무죄사면했어. 왜 정치적 능력이 최악이라는 평가가 있었는지 알겠지?

 

 


 

 

 

 



3. 양무제가 바꿔놓은 불교의 식문화


양무제의 기행은 날로 점점 심해졌어. 

종묘에 올리는 제사에서도 불가에서 말하는 먹기 위한 동물의 희생을 금한다며 고기를 금지시키고 정신수양에 방해되는 해로운 것이라며 술을 올리지 못하게 했어. 대신 과일/과자/차/야채 등으로 대신 제를 올렸으니

조상님들이 왔다가 뒷목잡을 일이였을거야.

 

 

 

 


이러한 불교의 금기 행동을 또 법으로 적용했어. 바로 유명한 ‘단주육문’이라는 법령인데 고기와 술을 끊으라고 공표했고 불교 신자답게 스님들에게 고기와 술을 먹지 못하게 먼저 시행했어. 


 이 법령이 계기가 되어 승려들은 이후에도 일절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술은 세월이 흐른 후 곡차라는 이름으로 한두잔 먹게되었어.

양나라에서 진라를 거쳐 수나라로 통일되면서 중국 전역에서는 이 단주육문이 불교에서는 법률처럼 지켜졌고,

그 이후 불교가 전파된 한반도-일본까지 퍼져 동아시아에서는 스님들이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4. 양무제의 최후


그럼 이 병맛테크인 불교덕후 양무제는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느냐.

앞서서 본거와 같이 과도한 사찰건설 등으로 나라 제정은 흔들렸고 또 그놈의 자비 때문에 법의 엄격함이 없으니 관리들은 신이나서 백성들을 착취하며 범죄를 저질렀고 여기저기서는 반란이 일어났어.


548년 양나라에 투항했던 이민족 장수 후경 이라는 자가 이민족들과 같이 1000여명의 군사로 반란을 일으켜.

하지만 양무제는 "보잘것 없는 오랑캐놈이 무얼 하겠느냐, 스스로 죄를 뉘우칠 것이니 놔두거라" 하고 방관했어.

즉 양무제가 관리들과 모반자들에게 무죄사면을 남발한 이유는 후에 그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생각 때문이였던 거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란이 수습되기는 커녕, 후경의 반란군은 불만에 쌓인 백성들이 가담하면서 1년도 안되어 10만명의 가까운 대규모 반란이 되었어. 황족들과 관리들이 부정을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게되니 그 욕심들은 자연스래 백성들의 수탈로 이어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민초들이 일어난거야.


난은 지속되었고 심지어 수도가 함락되기 전 진압군으로 30만 대군을 이끌며 반란군의 3배나 많은 병력을 지휘했던 수도방위 총사령관인 양무제의 아들 소륜 조차도 반란군에 의해 황제가 쫓겨나면 자신이 황제가 되겠지 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가지면서 수도를 비워두고 반란군들에게 점령 당하도록 수수방관해.


후경의 반란군은 수도에서 무참한 살육을 벌이는데 모든 사찰들을 불태우고 승려라는 승려는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수도 인구 80%가 도륙되는 참담한 사건이 벌어져. 양무제는 죽기 직전 유언으로 "자업 자득이다. 무슨 할말이 있으리오" 라는 지 혼자 해탈한듯한 말만 남기고 숨을 거두어.


 

 

 

 

 

 


5. 단자육문이 만든 새로운 요리기술, 정진 요리법


양나라 시절,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은 가급적 고기와 비슷한 맛이 나는 요리들을 만들려고 노력했지. (아무리 그래도 자의적 채식주의자가 아니면....솔직히 고기 싫어하는 사람 몇이나 되겠나)


주로 콩,밀가루,버섯,두부,연근 등을 주 재료로 해서 만든 요리법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정진 요리법이야.

요즘은 웰빙 시대라서 많은 각광을 받고있는 바로 사찰요리 라고 생각하면 되.


 

 


고기, 버섯탕수육, 표고버섯 육수와 나물무침등이 우리나라에선 많이 알려진 사찰요리들이지.

지금도 중국의 유명 절들 근처에 식당들은   素食 이라는 간판을 세운곳들이 많은데 점심 특선으로 정진요리법 음식들이나 야채로만 요리한 음식들이 나오는 곳이 많다고 해.


양무제 시대때 발달한 정진요리법 중 아직까지도 내려오는 요리중 대표적 음식은 콩고기야.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콩고기 유행을 타면서 마트에 가면 종종 볼 수 있었어

 

그런데 진짜 맛없기는 대박이라 점점 자취를 감추더니 지금은 거의 볼수가 없네


 

 

 

 

Posted by 쉬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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