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어려운 학문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 모두 학창시절에 수학문제 앞에 무릎을 꿇은적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옥같은 학문도 처음에는 단순한 시작이었다.

 

 

 

 

 

 

수학이란것은 수의 학문으로 당연히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갯수를 세는 것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단순한 셈도 보기엔 별것 아니지만 사실 고도의 추상화 과정이 동반되어 있는 일이야.

 

사과 하나와 나무 한그루, 저기 보이는 소 한마리와 내 옆의 사람 한명. 그리고 태양과 달, 그리고 별

서로 공통점이 없어보이는 이것들에서

 

 

 

 

 

 

"하나" 라는 개념을 이끌어낸 것이 

수의 학문, 바로 수학의 시작이다.

 

 

 

 

 

 

그 이후 수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실제 존재하는 수를 넘어 존재하지 않는 수 까지, 수 체계를 완성시키고

방정식을 풀 수 있게 되었으며 미분과 적분으로 물리 현상을 잘 알수 있게 되었다.

 

수학은 그 자체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처럼 보였고

다른 학문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방법론이었다.

 

 

 

 

 

 

이런 체계적인 수학의 발전 속에서도

모든 수학자들이 알고있지만 

쉽게 건들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어

 

 

 

 

 

 

그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

바로 "무한" 이다.

 

쉽게 건들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무한이 어느 수식에든 개입되면 그 수식은 망가진다.

 

그러면 가장 유명한 "무한"

제논의 역설부터 시작해볼까?

 

 

 

 

 

 

발 빠른 아킬레우스가 100m 앞의 거북이를 쫒아간다.

아킬레우스가 당연히 더 빠르니 금방이라도 거북이를 따라잡는다.

 

하지만 제논은 말한다. 

 

"

아킬레우스는 절대로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아킬레우스가 100m를 50m까지 좁히면 거북이도 조금 더 전진한다.

50m를 25m까지 좁힐 때에도 그렇다.

 

이렇게 무한히 반복되므로 아킬레우스는 절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

 

물론 말도 안된다는것을 모두 알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역설이 제시된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 역설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또 다른 유명한 사례를 보자.

지름이 다른 바퀴의 이야기이다.

 

 

 

 

 

 

지름이 큰 바퀴와 작은 바퀴를 중심이 같게 고정시키고 한바퀴를 굴린다.

 

 

 

 

 

 

그러면, 바퀴가 지면과 닿은 부분의 궤적은 이렇게 그려질 것이다.

 

한바퀴를 굴렸으므로 궤적의 길이는 원의 둘레와 동일해야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작은 바퀴와 큰 바퀴가 지나간 궤적의 길이가 동일하다.

그렇다면 두 바퀴의 테두리 둘레가 동일하단 뜻인가?!

 

 

 

 

 

 

원이 아니라 육각형을 한변 굴려볼까?

 

바깥의 큰 육각형은 땅에 계속 맞닿아 있지만

안쪽의 작은 육각형은 조금씩 건너 뛰는 간격이 발생한다.

 

육각형을 팔각형으로,

팔각형을 이십각형으로 늘려나가면 저 '간격'은 줄어든다.

 

원을 '무한각형'으로 생각한다면 틈은 메워져 직선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한이 개입되면 뭔가 설명하기 힘든 일이 생긴다.

개중 위의 예시처럼 다행히 설명이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그마저 쉬운것은 아니었기에 수학자들은 자연스레 무한을 꺼려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자연스레 무한을 다루는 것을 꺼려하곤 했다.

 

그렇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법

무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수학자가 바로 오늘 다룰

 

 

 

 

 

 

'게오르크 칸토어'이다.

그는 어떻게 무한에 접근했을까?

놀랍게도 매우 단순한 발상이었다. 

 

 

 

 

 

 

바로 개수를 세는 것이다!

그는 수학이 처음 탄생했을 때로 돌아간다.

무한대를 연구하기 위해 0으로

다시 숫자로 돌아갔다.

 

 

 

 

 

 

갈릴레오가 말했다.

'일대일 대응을 할 수 있으면 두 집합은 크기가 같다'

 

무슨말이냐고?

 

 

 

 

 

 

동일한 바구니에 같은 양의 공을 넣어보자

그 안에 포함된 공의 개수가 같다면

이는 두 바구니가 일대일 대응을 했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다시 말하면

양 집합(바구니)에서 원소(공)를 동시에 하나씩 꺼낸다.

꺼낼 원소(공)가 먼저 떨어지는 쪽이 크기가 작은 것 이다.

 

동시에 떨어진다면? 크기가 같은 것이다.

칸토어는 여기에서 시작했다.

 

 

 

 

 

 

모든 자연수(1, 2, 3....)와 모든 짝수(2, 4, 6...) 중에서 뭐가 더 많을까?

자연수 안에 짝수가 있으므로 자연수가 더 많지 않을까?

 

아니다.

 

자연수와 짝수는 그 갯수가 같다.

위의 사진처럼 자연수 바구니에서 숫자 하나를 꺼내면,

나는 짝수 바구니에서 똑같이 숫자 하나를 꺼낼 수 있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다.

누가 자연수 n을 꺼낼 때마다 나는 언제든 짝수 2n을 꺼낼 수 있다.

곧 자연수와 짝수는 그 갯수가 같다.

 

비슷한 방법으로 자연수와 홀수도 그 갯수가 같다.

정수와 자연수의 갯수가 같다는 것 역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 여기까진 좋다.

그럼 유리수는 어떨까?

 

 

 

 

 

 

먼저 첫째줄엔 분자가 1인 분수형태의 수를 모두 적는다.

두번째 줄엔 분자가 2,

세번째 줄엔 분자가 3 ... 계속한다.

 

이렇게하면 모든 유리수를 표시할수 있게 된다.

 

이제 여기에 화살표 방향대로 순서를 주면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이 된다.

(그림을 살짝 기울여 삼각형 형태의 숫자 집합으로 보라)

 

 

 

 

 

 

즉 유리수는 자연수와 개수가 같다.

이쯤되면 왠지 결국 모든 무한집합들의 크기는 같다는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닐까?

칸토어는 이제 실수 전체와 자연수를 비교해보기로 한다.

 

본격적인 논의 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 하나를 먼저 증명해보자.

"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모든 실수의 집합은 실수 전체의 집합과 크기가 같다."

이것을 보이려면 (0, 1)과 실수 전체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만들어야하는데, 삼각함수를 이용하면 간단하다. 

 

즉 0과 1사이의 어떤 실수 x를 바구니에서 꺼낼 때마다 나는 tan (x-1/2)*파이를 꺼내면 된다.

따라서 (0, 1)은 실수 전체와 크기가 같다.

 

이제 자연수 전체와 (0, 1) 사이의 일대일 대응만 찾으면 된다.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찾지 못할것이다.

 

아니 그냥 한번 찾았다고 쳐보자.

한 번 둘의 크기가 같다고 가정해보는거다.

그러면 자연수와 실수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있을 것이다.

 

 

 

 

 

 

가령 이렇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저 대응 관계에 없는 새로운 실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방법이 그 유명한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 이다.

 

우리는 첫번째 숫자의 소수점 아래 첫째 자리,

두번째 숫자의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

세번째 숫자의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씩만 숫자를 가져와 새로운 숫자를 만들 수 있다.

위 예시에서는 0.859185709......가 될 것이다.

 

여기서, 각 단계의 숫자에 1 씩만 더해보자. 즉 1은 2로 2는 3으로... 9는 0으로 바꾸기로하자.

그러면0.859185709.....라는 숫자는 0.960296810....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숫자는 우리가 만든 대응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숫자다.

 

왜냐하면 첫번째 숫자와는 첫번째 자리가 다르고,

두번째 숫자와는 두번째 자리가 다르고.... n번째 숫자와는 n번째 자리가 다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좀 더 명확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숫자는,

여전히 (0, 1)에 있는 실수인데도 자연수와 대응시킨 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수의 집합은 자연수의 집합보다 크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결과였지만

 

 

 

 

 

 

그래서 동시대 학자들에게 얼른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칸토어 본인의 말년은 상당히 불운했고

결국 1918년 세상을 떠났다.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 게오르크 칸토어

Posted by 쉬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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